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은 바로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나의 삶의 최고 가치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 더 우위에 예수님과의 만남을 누리는 삶을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입니다.

빌립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43절과 44절에서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43절을 보면 굉장히 단순하게 빌립과 예수님이 만나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아주 직설적이고 단순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이 말은 ‘내 제자가 되어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빌립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빌립은 어떻게 바로 응답함으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누리며 살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빌립을 만나기 위해 벳세다로 들어가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찾으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찾으려는 사람이 있는 삶의 현장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빌립은 어떻습니까? 다음 이야기인 나다나엘을 만나는 장면에서 빌립의 이야기를 보면 빌립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있는 빌립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는 분명하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로 결단할 수 있는 만남이 빌립에게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만난 그 예수님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두 번째 사람인 나다나엘은 빌립과는 조금 다르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 가운데 제일 뒤에 있는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는 말에 관심을 둡니다. 당시 나사렛은 못사는 동네이고, 벳세다는 상류층이 사는 동네입니다. 그러니 벳세다 사람으로서 나사렛 사람을 자기들의 기준에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습니까?”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다나엘을 향해 빌립이 말하기를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일단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이미 자신을 알고 있고, 자신의 속사람까지 보고 계신 것을 듣게 됩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48절에 보면 나다나엘 안에 메시아에 대한 갈망을 보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말은 메시아에 대해 묵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이처럼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은 그냥 만남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반응할 때 우리에게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새생명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법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받은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우리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