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며, 사역할 때는 다른 성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모르고 있다가, 이렇게 오랜 시간 성도들이 함께 모일 수 없고, 함께 사역할 수 없는 상황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옆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성도가 있다는 것, 나의 작은 문제라 할지라도 함께 기도해 주는 성도가 있다는 것,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행동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성도가 있다는 것, 같이 찬양하고, 같이 기도하며 영적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던 성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함께’라는 단어와 ‘선물’이라는 단어가 합쳐서 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공동체는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주는 모임이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야말로 진정한 공동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온몸을 바쳐 우리를 살려 주셨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껏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으로서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없으시기 때문에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일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우리 안에 임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움직이시며 모든 일을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왜 꼭 만나야 하는가? 왜 꼭 같이 있어야 하는가? 왜 꼭 공동체로 움직여야 하는가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로 얼마든지 예배드릴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 더 많습니다. 생명의 공급이 그렇습니다. 햇살이 그렇습니다. 맑은 공기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휴가를 내어 여행지를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보고, 느끼고, 만지는 경험들이 우리를 새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휴가 가는 곳의 영상은 가서 볼 때보다 더 멋지게, 더 아름답게, 우리가 못 보는 것까지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보는 것과 가서 직접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본 회퍼는 ‘성도의 공동생활’이란 책에서 공동체란 너와 내가 직접적으로 만나는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를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사랑을 누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누려야 합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내하시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나를 잡고 있는 그 손 말고 다른 손으로 또 다른 공동체 안에 들어온 성도의 손을 잡으십니다. 그리고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며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혼자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고독의 자리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야 할 때는 그 시간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수는 없습니다. 혼자 할 수 없는 영적인 힘은 공동체를 통해 나오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기간에 선창교회는 어떤 공동체이어야 할까를 늘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코로나가 끝나 언젠가 자유로운 모임이 가능할 때, 분명 지금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이전의 교회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벌써 까마득해져 갑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아름답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가는 교회로 쓰임 받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