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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에서 사람들이 등장하여 논쟁을 벌이는 의도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는 것입니다. 책잡는다는 다는 말은 시비를 걸기 위함이라는 것과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잡기 위해 하는 행동을 살펴보면 먼저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냅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그동안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보낸 또 다른 사람들입니다. 정작 궁금해 하는 자신들은 뒤로 빠지고 다른 사람을 투입하여 예수를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논쟁의 주제는 세금 문제입니다. 세금은 로마사람들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와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세금 문제로 이야기하면 세금을 바치지 말자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헤롯당은 로마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마땅히 로마에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서로 앙숙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죽이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이들이 하는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칭찬하는 것입니다. 14절에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이들의 칭찬은 한 마디로 영혼이 없는 칭찬입니다. 아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묻기를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여기서 바친다는 말은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제시한 내용에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헤롯당은 좋아하겠지만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예수를 어렵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좋아하겠지만 헤롯당은 로마의 법에 예수를 고발하여 어렵게 할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반응하십니다. 먼저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질문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들의 질문이 자신을 어떻게 어렵게 할지를 분명히 보고 계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자들을 향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동전입니다. 당시 세금은 데나리온으로 바쳐야 합니다. 그들은 즉각 예수님께 동전을 내 보입니다. 예수님이 질문합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당시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황제 아우구스투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을 이야기하다가 하나님의 것까지 이야기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어떤 것입니까? 가이사의 형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직접 새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동전에는 사람의 얼굴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때 누구에게 속하였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바치라고 하신 것은 ‘되돌려주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가이사가 호혜를 베풀었다면 가이사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면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땅에서 가이사에게 되돌려주어야 할 것은 되돌려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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