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계속해서 경계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정결과 부정이라는 경계선을 넘나드셨습니다. 전통적 경계선을 넘으신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이야기를 통하여 신관의 개념을 넘나드셨습니다. 영적 경계선을 넘으셨습니다.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을 통하여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라는 사회학적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사회학적 경계선은 정치와 역사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회학적 경계선도 뛰어넘으신 것입니다. 주의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을 주의 길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15절에서 예수님께서 레위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다고 말합니다. 16절에도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것으로 봐서 세리와 죄인이라는 규정은 이미 그 사회 속에서 굳어져 있는 지위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저런 무리들을 향하여 그들은 세리야, 죄인이야, 라고 호칭할 정도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사고구조가 그렇게 굳어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오늘 예수님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바리새인의 서기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이라는 분파도 사회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그룹입니다. 유대인의 초기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회학적 구분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 때가 많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바리새인이라고 구분하여 자기들의 신앙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할 때는 자기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은 특정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당시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먹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돕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여기서 강건한 자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서기관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병자는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의사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의사의 관심은 강건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관심은 병든 사람, 죄인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우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을 보는 잣대는 저들이 나의 도움이 필요한가 아닌가를 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참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은 거짓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도 내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백성의 경계선을 확장해 나가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레위를 부르신 이야기를 통해 내 백성은 누구인가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 하나님이 필요한 백성. 그 백성들을 찾아가셔서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확장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는 백성을 어떻게 나누고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백성의 경계선을 다시 보고 우리의 시각이 확장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