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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충돌은 교훈의 충돌입니다.

21절에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가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바로 그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안식일과 회당은 유대인들을 표현하는 단어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의 삶의 습관, 전통적인 유전들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포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왜 사람들이 크게 놀랐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회당을 통하여 기대하고 있던 것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그 가르침은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별히 구전 율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율법을 강론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의 잣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 있는 자와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권위라는 단어는 능력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단순히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능력, 하나님 나라의 능력입니다.

 

두 번째 충돌은 영적인 충돌입니다.

성경에는 사탄, 마귀, 귀신들이 등장합니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천사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사들이 일어나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범죄한 천사입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가장 먼저 사역을 하면서 보여주신 것은 바로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절에서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들어가실 때 그곳에는 귀신이 일할 수 없고 나가야만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는. 예수님의 생명이 머무는 곳에는 거짓이 머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둠이 머물 수 없습니다. 귀신은 멸망당할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압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압니다. 예수님을 이길 수 없는 자들입니다.

 

세 번째 충돌은 삶의 충돌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보통 손님이 오면 그 집에서는 손님을 맞이해야 하지만 시몬의 장모는 열병에 걸려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그때 열병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들었습니다. 누워 있던 사람이 수종드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수종들었다는 말은 섬겼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섬긴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나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적인 삶의 자리에 묶여서 거기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만져 주실 때, 우리를 일으켜 주실 때 우리는 일어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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