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창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래서 건물을 교회라고 하지 않고 성도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로만 움직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곳입니다. 성경에 나오고 있는 초대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초대교회는 이런 강력한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은 친밀함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과의 관계가 분명하고 깊어질 때 우리는 이런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7절에서 ‘그들이 이 말을 듣고’라는 말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42절에서도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37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들어와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이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치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의 스타일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식사하는 것과 기도에 힘썼습니다. 신앙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교제가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38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의 확신을 가지게 되면 일어나는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43절에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 속에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이 두려운 마음은 단순한 공포를 말하지 않습니다. 경외함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때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심을 보게 되었을 때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표적을 본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체험을 삶으로 옮겨 놓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칭찬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를 회복할 때 그들은 참된 잔치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40-41절에 말하고 있는 것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는 선포입니다.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41절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숫자가 삼천이나 더했다고 말합니다. 47절에 보면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패역한 세대의 삶에서 탈출하여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는 것을 말합니다. 어지럽고 어두운 세상의 가치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선창교회는 이름 속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먼저 소리지를 때 선창이라고 부릅니다. 그 의미를 가지고 와서 선창교회는 앞서 외치는 교회입니다. 남들보다, 세상보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앞서 외치며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선창교회가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창조적인 교회, 교육과 교제가 있는 교회, 회복이 있는 교회로서 이 땅에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가올 60년을 기대하며 예수의 생명으로 움직이는 교회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