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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다양한 훈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훈련이 진정한 제자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더군다나 다음세대에게는 훈련으로 제자를 만드는 방식은 진정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세상 속에서 삶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보고 느끼고 누리며 가치가 형성되고 삶의 모습이 만들어져서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삶을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기에는 교육이나 훈련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양육을 할 때 이루어집니다. 바나바와 바울이나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사도의 사역이나 선지자의 사역은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를 낳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우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로 제자들을 학문적으로, 신학적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함께 사역에 참여하심을 누리실 때 그들은 제자로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 자녀들을 양육하기를 원하십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단지 지식을 몇 가지 전해주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있습니다. 함께 혼란스러워하며 겪는 시간이 있습니다. 부모의 전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탈진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부모 됨을 누리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고 보람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자녀들이 세워지고 삶이 변화되며 소망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교회가 이들을 양육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어떤 행사를 통해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른들이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4에 보면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라고 장로의 자격을 이야기합니다. 교회의 장로는 자녀들이 스스로 순종하고 따라 배울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신뢰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부모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자녀세대에게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본문은 어린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이 랍비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받게 하려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삶 속으로 이끌어 오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마땅히 자녀들이나 어린아이들에게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삶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삶의 자리를 보여주고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나 어른들의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그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어른들의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들어가 살아가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게 살고 누리는 그 삶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들이야말로 하늘을 소유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른들에 의해, 부모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를 걸어가고 있는 그 삶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자들처럼 그 삶의 자신의 기준으로 막아서는 안 됩니다. 양육으로 함께 살며 따르게 해야 합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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