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생활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든 삶이 예배이고, 헌신이고 섬김의 자리입니다. 날마다의 삶이 이런 예배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런 예배의 삶을 살 때 22절에 보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리에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중심부에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정하고 우리 내면의 영적 깊은 곳에서부터 집중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이 하나님을 누리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온전한 믿음은 확신 있는 믿음입니다. 주저하거나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삶 속에 있어야 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모이기 이전이라 할지라도, 삶의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회 집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모일 때 집중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살펴볼 것은 서로 돌아보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가족입니다. 같은 가족으로서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서로 돌아본다는 것은 누구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는 것입니다. 상호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가족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는 관계가 될 때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참된 치유와 회복, 참된 삶의 고백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서로 돌아보아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먼저 서로 지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풀어 주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마음에는 회복과 치유, 자유, 평화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을 낮추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남을 세워가고 치유하며 회복하고 자유하게 하기 위한 모임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만나야합니다. 격려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선행을 격려해야합니다. 선행은 상대방이 살면서 감사한 일들이나 잘 한 일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인정하고 지원하며 지지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 된 것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것이 그 삶에 더욱 큰 영향력으로 남도록 세워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서로’라는 단어가 매우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회에 모여 서로 능동적으로 교회의 모임에 참여하여 서로의 유익을 구하고, 서로 세워가며, 서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는 교회여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심을 인정하고 모두가 함께 예배에 참여하며 성전의 임재를 누리고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공동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지체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기쁨을 반영하고, 안타까움도 반영하고 소망도 함께 반영하는 삶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 모이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