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 사건입니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 아니라 장사 지낸 바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게바에게, 열 두 제자에게, 오백여 형제들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에게, 바울 자신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어떤 황홀경의 경험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눈으로 목격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진리일 뿐 아니라 이 진리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이고, 그것이 우리의 복음의 핵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확실한 증인들을 소개함으로 부활이 역사적으로 확실한 사건임을 말하면서 동시에 사도 바울은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동일하게 부활하게 될 것을 확신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불가능하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하셨으면 사도들의 가르침은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의 믿음도 헛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헛된 것이라는 말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활의 소망으로 잠자는 자들도 미래가 없이 완전히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이고, 성경대로 일어난 사건임을 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들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은 죽음의 문제도 해결하신 것입니다. 죽음이 해결되었다는 것은 생명이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회복된 것입니다. 이 생명을 가진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부활을 누리게 된 자들이 오늘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도 이야기합니다. 31절에서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합니다. 오늘 내가 직면하는 위험이나 어려움도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감당하는 자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58절에 보면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단 사설에 우리의 믿음의 신념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고 살아가는 이 삶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부활의 확신은 오늘을 이기게 만들어 줍니다. 부활을 믿는다고 오늘을 함부로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담대하게 도전하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