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시작은 정체성에 있습니다.(1-3)
4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이 감사의 출발은 바로 사도 바울 자신이 고백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정체성, 다시 말하면 성도의 정체성은 먼저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안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그들을 특별히 구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왜 구별하셨습니까? 그들을 통해 이루시고자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시려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유일한 중심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되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감사의 이유는 은혜와 기대입니다. (4-7)
사도 바울은 스스로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감사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는 문제투성이 교회였고, 늘 갈등이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감사의 이유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고린도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감사의 이유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5절부터 바울은 감사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영적 은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 고린도교회를 흔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으로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하여 그들이 앞으로 누리게될 미래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뿌리는 하나님이십니다. (8-9)
8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주님께서 주님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임을 말합니다. 9절에 보면 너희를 불러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끝에 보면 하나님은 미쁘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미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그 사랑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변함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일어나기도 하고 낙심할 일도 일어납니다. 좌절하여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끝까지 견고하게 서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감사하게 하는 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