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구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다가 모세로 말미암아 해방되어 광야로 나아 온 것처럼 죄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의 가정을 홍수의 멸망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구원에 관한 표현들입니다.
구출을 위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외부에서 와야하고 능력으로 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의 죽음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그 일이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음을 믿을 때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의로운 자라고 선포되는 것입니다. 또한 화해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깊은 관계 속에서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설명할 때 ‘이미 그리나 아직’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구원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것은 신분, 상태만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 삶도 함께 변화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로운 자가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것은 삶 자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되었다고 해서 고난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는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죄악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있었던 충돌은 더 가지고 더 누리기 위한 것이라면 구원받은 이후의 충돌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충돌입니다.
이와같이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궁극적 구원,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구원은 완성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구원을 누리는 자리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악과 고난 가운데서 이 세상의 시민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이 세대를 본 받지 않도록 하십니다.
참된 구원의 완성은 우리의 영과 육이 모두 구원받는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에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롬 2:7-8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른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