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갈등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갈등은 오히려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극으로 달하면 문제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전쟁을 마친 입다와 그 전쟁 때문에 생긴 에브라임 지파간의 갈등이야기입니다. 입다는 암몬 왕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기의 어리석은 서원으로 말미암아 자기 딸이 자기를 맞이하러 나옴으로 인해 자기 딸을 바치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시련 속에 빠져 있는 입다에게 에브라임 자손들이 몰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에브라임 지파가 입다에게 화를 냅니다. 그 이유는 ‘너희가 암몬 자손과 싸우기 위해 강을 건너 갈 때에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아마도 에브라임 지파는 그들이 전쟁의 승리의 중심에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습니다. 시기심과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겠습니까? 에브라임은 요셉의 두 아들 중 차남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두 배의 과실입니다. 아마도 남보다 더 얻고,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자존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전쟁의 승리에 자신들이 뒤에서 구경만 하는 구경꾼처럼 된 것에 대하여 속이 상해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사사기 8장에서 기드온에게도 이미 시비를 건 전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기드온이 마음이 좋아서 그랬는지 잘 달래서 아무런 싸움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서도 동일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갈등이 일어나고 관계의 어려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존심의 문제, 시기심의 문제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에브라임은 입다에게 우리가 너희의 집을 불 태워 버릴 것이라고 위협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분노를 상대방에게 위협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입다는 이런 에브라임에게 반응합니다.

2~3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는 입다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입다가 싸움을 하러 갈 때에 에브라임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응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적극적이어야 하는가를 보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는 우리가 매우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사용하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입다는 에브라임과 싸우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길르앗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두 지파간의 전쟁에서 길르앗이 에브라임을 물리칩니다. 특별히 입다가 싸움을 하게 된 이유는 4절에 말한 대로,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고 조롱하였기 때문입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강 나루터에서 도망가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한 명씩 잡습니다. ‘나로 건너가게 해 달라.’는 그들에게 에브라임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때 그들이 아니라고 말하면 쉽볼렛이라고 말해 보라고 합니다. 그때 쉽볼렛이라고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런 내전으로 말미암아 에브라임은 42,000명이나 죽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입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6년 동안만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입다도 참된 사사로서의 승리자가 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잘 살아야 합니다.

선창교회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