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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배경으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0:7에 보면 여호와께서 블레셋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셨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십팔년동안이나 억압을 하였습니다. 또한 9절에 보면 암몬 자손이 요단을 건너와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럴 때 일반적인 사사기의 유형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회개하는 그들을 보시며 뻔뻔스럽다고 야단을 치십니다. 10절에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회개도 없고 진실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구원한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13절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탄식소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섬기는 그 신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삶의 전적인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부분을 확실하게 정립해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입다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입다의 배경입니다. 11장에서 입다의 자라난 배경이나 삶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순조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길르앗이란 사람과 창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가나안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입다가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그의 이복 형제들이 그를 내쫓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집에서 가업을 잇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에게 쫓겨난 그는 형제들을 피하여 도망갑니다. 그리고 돕 땅에 거주하는데 잡류가 그에게 모여옵니다. 잡류는 건달들입니다. 아비멜렉이 형제들을 살해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입다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약탈하러 다녔을 것입니다. 아비멜렉도 마찬가지이지만 입다도 자신의 출생이나 환경을 긍정적으로 뛰어 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리더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장 4절부터 암몬 자손의 위협이 점점 거세지자 길르앗의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합니다. 그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 건달로 살아가는 입다를 데려올 정도라면 얼마나 사람이 없었고, 위급한 상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10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를 리더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세운 사사가 된 것입니다. 장로들은 입다에게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6절에서 장관이 되라고 말합니다. 지휘관이란 말과 통치자란 말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관이란 말과 머리가 된다는 말의 차이입니다. 그냥 전쟁에서 전쟁을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암몬과 싸워 이기면 누구든지 통치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입다에게는 단순한 지휘관을 제안합니다. 입다가 거부하자 머리가 되게 해 주겠다. 다시 말하면 통치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스라엘의 통치자와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십니다. 입다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세운 유일한 사사가 된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임명된 입다가 그 다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관건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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