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도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맡긴다고 하면서도 그 문제를 자꾸 쳐다볼 때가 있습니다. 그 기도내용에 집중하면서 작은 변화에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급해 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박국이 여호와 하나님께 두 번째 질문을 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위한 하박국의 자세를 소개하는 것과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자세에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1~3절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하박국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와 하나님이 취하게 하시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박국이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하박국은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하박국의 행동을 표현하는 세 가지 동사를 소개합니다. 서서, 기다리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서, 그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그리고 그 결과를 보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박국은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위해 ‘파수하는 곳에 선다.’, ‘성루에 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파수하는 곳은 성이 있을 때 그 성의 가장 높은 곳입니다. 가장 높은 곳이란 말은 적이 쳐들어 올 때 가장 멀리 보이는 곳, 가장 잘 보이는 곳입니다. 어느 곳에서 적이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그곳에서는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루도 이와 같은 곳입니다. 성벽에서 가장 높은 곳, 가장 최전방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안의 죄악과 어지러움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성 밖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기 위해 파수하는 곳에 서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망보다, 지켜보다, 감시하다, 바라보다, 주시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박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응답이라는 사건이나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해 보면 결국 하박국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은 응답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응답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사건이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그 일을 행하실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전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 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지각하다, 느끼다, 주목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에 느끼고 지각하고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본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수용한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전달된 말씀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박국은 기다릴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말로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자리에서 수용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는 장면이 2절과 3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두 개의 동사를 사용하십니다. ‘기록하라. 묵시를! 새기라. 판에!’지금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묵시입니다. 계시입니다. 그 묵시의 말씀을 기록하여 새김으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라는 것이며 동시에 보전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선견자가 그 말씀을 가지고 달려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