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요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습니까? 그저 요나의 이야기로 끝났습니까? 아니면 요 나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까? 요나서 4장은 진정한 요나서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하여 진짜로 다루고 싶으신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4장은 요나의 본심을 볼 수 있는 장입니다. 요나가 진짜로 가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요나가 한 행동이나 순종은 거짓이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시고 요나를 사용하셨던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은 요나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불완전한 그 모습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서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신다면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디까지 듣고 순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듣고 끝나는 믿음이 있고 가슴까지 내려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고 말합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결정을 매우 싫어하였습니다. 화를 냅니다. 이것이 요나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을 갔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지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나로 하여금 더 전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갇혀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안에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요나와 하나님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나와 하나님이 같이 생각하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맞서는 사람들을 기적적으로 돌아오시게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위해 일하실 계획이 있으신 것을 요나도 하나님도 동의하였습니다.
이처럼 요나와 하나님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요나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요나와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한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머리에 가지고 계시던 생각들을 그대로 실천하십니다. 마음에 품고 마음에 느끼고 마음의 감동으로 움직이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머리의 생각은 머리로 끝났습니다.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용납되지 못하는 그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화를 냈던 것입니다. 요나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선순위로 말미암아 요나의 생각이 왜곡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동시에 요나의 감정도 왜곡되어 표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승리자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삶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연약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언제나 자기 안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내 안에 가두고 살아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삶을 직접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드러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하셨을 뿐 아니라 그 마음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만 바뀌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뀌기를 원하십니다. 좌우도 구별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가지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의 마음을 우리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요나의 삶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