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 어둠으로 (1-9)
3절에 사울이 길을 가는데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비춥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다른 사람의 손에 끌려다녀야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능력으로, 배경으로 다른 사람을 이끌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둠에 들어가게 되자, 다른 사람은 둘째치고 자기 스스로 어디로 갈 수 있는 힘이 없어진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함을 보는 자리로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마치 무덤에 갇힌 것 같은 사흘,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며 멈추었던 사흘입니다. 어쩌면 바울이 나중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때 나는 그때 죽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 빛으로 (10-19)
사울이 깊은 어둠 속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은 10절에 ‘그때에’라고 시작합니다.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환상 중에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울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아나니아가 말합니다. ‘주님,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친 사람입니다. 지금도 대제사장들에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잡아갈 권세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나니아에게 15절에 주님이 ‘가라. 이 사람은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전혀 새로운 삶의 정체성을 그에게 부여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갑니다. 17절에 아나니아가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라고 주님이 하실 일을 말씀합니다. 그럴 때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비추신 그 빛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 빛이 인도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 새 삶으로 (20-31)
21절에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할 때 듣는 사람이 그를 의심합니다. 예전 사울의 모습으로 판단합니다. 이런 사울의 모습이 22절에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23절에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럴 때 누가 도와줍니까?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려 도망가게 합니다. 그 후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갑니다. 거기서 제자들과 어울릴 때 제자들이 두려워합니다. 그때 바나바가 그를 데리고 가서 제자들에게 소개해 주고 설명해 줍니다. 다른 제자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29절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할 때 헬라파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형제들이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냅니다. 이처럼 사울이 새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사울 안에 있는 분명한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환경적으로 여전히 사울에 대한 선입견들이 있었기에 사울이 그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사울이 새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