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초자연적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베드로는 그렇게 말하는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과 함께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일하심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타이밍이 다릅니다. (8)
국어사전에서 타이밍의 뜻을 ‘시간적으로 원하는 순간에 동작을 맞추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시간과 동작이 같이 일어날 때 타이밍이 맞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모든 일이 타이밍이 맞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과 우리의 타이밍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하나님은 밖에 계신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타이밍과 우리의 타이밍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내 타이밍과 일치하려고 할 때 우리는 조급해지거나 무시하게 됩니다. 특별히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개념과 영원하신 하나님이 느끼시는 시간의 개념은 다릅니다.
두 번째는 인내하십니다. (9)
하나님은 외부의 영향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볼 때 인내하시는 분이십니다. 9절에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라고 말합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인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절대로 서두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9절에서도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대상은 바로 나입니다. 나를 향하여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참지 않으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바라볼 때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9절에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래 참으시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을 회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세 번째는 드러내십니다. (10)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심을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은 인내하기만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은 그 일을 다루십니다. 유다가 반복하여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은 일정 시간 인내하십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이 끝나게 되면, 주의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언제 멈추실지 알지 못합니다.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날을 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게 되면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벗겨 내셔서 그 하늘 아래 있는 것들을 다 드러내실 것입니다. 지구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 말, 생각을 다 드러내셔서 심판하시고 공의를 베푸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