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우리 귀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훌륭한 리더로서의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리더십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느헤미야서를 리더십의 샘플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재건의 이야기를 다룰 때, 위인들에게만 초점을 두면 정말 중요한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그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에스라서 1장부터 6장까지는 에스라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에스라가 아니라 스룹바벨이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책 제목이 에스라이다보니 에스라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에스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라며 시작합니다.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그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여호와 하나님은 또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역사, 나라, 교회, 가정의 주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와 역사를 뛰어넘는 이 시간을 다스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바벨론 포로 70년이면 세상은 단절이 일어날 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어가십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를 오늘 본문은 ‘감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스스로 모든 일들을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므낫세 지파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앗수르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일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멸망시킨 것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라를 움직일 때 왕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십니다. 본문에 보면, 귀환의 과정에서 페르시아 왕의 마음만 감동하게 하실 뿐 아니라 정작 돌아와야 하는 유대인의 마음도 감동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감동한 것이 아닙니다. 그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감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가진 것을 내어 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성령 안에 머물러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내 생각, 내가 원하는 감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우리가 신앙의 삶을 살 때 가지는 오해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무엇이든지 완전하게 해결된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는 장면을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것이라면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짓고 살아갈 때 완전하게, 완벽하게 재건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 그렇게 일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사실 재건될 때의 모습은 참으로 초라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돌아와 거주할 집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쩌면 바벨론에, 아니 페르시아에서 계속 사는 것이 훨씬 주거환경이나 삶의 질에서는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게 하셨고, 계속하여 그들이 재건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소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연약하고 작은 것 같아도 우리가 마침내 누릴 그 완성된 곳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에스라서는 격려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 회복되고 성전이 회복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시고, 그들이 하나로 뭉쳐 재건작업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온 백성이 완전한 회복을 꿈꾸며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