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대림절입니다. 대림절은 이미 오신 예수님과 아직 오시지 않은 예수님, 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바라보며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며,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믿는 것이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고백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여러 가지 고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가득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대림절을 맞는 오늘 우리가 바라볼 모습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말할 때 선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일반적으로 선하다고 할 때 착하다, 곱다, 어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때 선은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좋다는 것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좋은 것의 기준은 바로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행동은 하나님 스스로에 의해 인정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의와 공의를 먼저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만 바라보면, 우리의 신앙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니까 내 삶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으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나 중심의 신앙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임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선하심과 사랑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온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만 떼어서 특별히 돌보시는 분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어 내시기 위한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은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은 단순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규정하는 용어일 뿐 아니라 나에게 연결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라는 이 고백은 오늘 내 삶을 정의할 뿐만 아니라, 나의 미래를 열어가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오늘 내 삶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고 계시고, 어디로 이끌고 계신가를 보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은 내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이 내 삶 가운데 있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고 그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지금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는 그 자리를 향하여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이것이 왜 그때 그렇게 하셨는지를 알게 합니다.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