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은 내 안에 즐거워하다,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은 성도들은 늘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웃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4절에서는 하나 더 보태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삶은 늘 웃으며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기쁨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외형적인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 이 빌립보서를 감옥에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미움받고, 박해받고, 욕먹고, 학대당하고, 헐뜯음을 당할 때도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기쁨을 막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바울은 기쁨을 이야기할 때마다 앞에 ‘주 안에서’라는 말을 붙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기쁨은 내가 만들어내거나 내가 기분이 좋거나, 내가 누릴 수 있거나, 내가 만족하는 상태에서 누리는 그런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기쁨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절부터 11절까지 두 가지 개념을 계속 비교하면서 우리를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이 자신의 기쁨의 원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 율법주의자들의 삶은 기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기쁨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3절에서 성령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4절에서 6절에 보면 자신은 누구보다 외형적인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쁨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찾을 수 없었던 기쁨을 찾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로 인해 기뻐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처럼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주 안에서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바라본다, 인식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인식할 때 기뻐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의 궁극적인 모습은 기쁨이라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기쁨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쁨을 쏟아부으시기를 즐겨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라고 요청하십니다. 그 즐거움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누리고 있던 것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궁극적 목적지는 하나님의 그 즐거움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선다는 것은 그 즐거움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토저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분의 애정에 있어서, 감정이 변하거나 식지 않으시며 열정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기쁨은 하나님 자신에 대한 기쁨을 말합니다. 그 기쁨은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기쁨은 약화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기쁨으로 가득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소유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는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하면, 바로 부활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죽은 자로 살지 않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 아니하고,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부활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