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종교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영적 성숙과 전도에만 열심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다가도 교회가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것을 발견하고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남북통일 문제, 인권, 저임금으로 인한 차별대우, 비정규직 문제, 인권 문제,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문제, 다문화 가족들의 문화, 공교육 문제, 그 외에도 환경 파괴 등 많은 문제에 관하여 관심이 없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국 교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자기 의를 자랑하는 모임으로 밖에는 보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잘못과 허물을 진정으로 인정하기 시작할 때 교회를 새롭게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성숙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때입니다. 교회의 잘못을 하나님께만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향해서도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 참여적이고 문화 참여적인 종교입니다. 그리고 선행을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이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 사실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의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이 바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은 결코 아니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선행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라고 가르칩니다. 고아나 과부나 객에 대해 긍휼과 환대를 베풀라고 합니다. 원수 된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선한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선행은 나눔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선행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돈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재능과 사랑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로마 제국 시대에는 교회가 인권을 유린당하는 여성을 돕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모든 사람이 꺼리는 환자를 돌보는 일에 가장 먼저 나섰습니다. 당시 죽은 가족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는데 교회 공동체가 신자나 불신자나 차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불신자들도 개종하게 되었고 개종하지 않더라도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한국 역사 안에서도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에 보육원이나 양로원 등 사회복지 시설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현재도 사회복지 시설의 60-70%를 운영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현재도 한국 교회는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책임을 다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교회 외형을 키우는 일에 예산을 다 사용하고 사회, 문화적 참여를 하지 않는 일들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라도 외형을 키우기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일을 자제하고 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과제들을 껴안고 해결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선행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