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 교단 수는 374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예배한다고 하는 한국교회에 왜 이리 많은 교단이 필요할까요? 기독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교파가 너무 많다는 것을 핑계 삼아 복음을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나누어져 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내에 교파가 많다는 것은 종교개혁이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에 그렇게 많은 교파와 교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존재합니다.

먼저 혼란을 피하기 위해 교파와 교단의 차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희준 교수의 저서 「기독교 교파 한눈에 보기」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단은 “하나의 헌법이나 단일한 조직을 갖추고 대외적으로 법적 주체가 되는 단체”를 말하는 것이고 교파는 “법적 주체는 아니지만, 같은 역사와 전통 및 여러 공통 요소를 공유한 교단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교단보다 교파가 상위 개념인 셈입니다.

개신교는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성결교, 오순절교 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조차 다른 교파에 속한 사람들을 오해하거나 환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다른 교파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면 서로 환영하고, 관용하고, 인정하고, 사랑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파가 많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파의 다양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부분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나무라는 종개념으로 부를 수 있는 나무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소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나무뿐 아니라 꽃도, 산도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고, 구름의 모양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1장 11-12절의 말씀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구절은 하나님이 메마른 획일성보다 풍성한 다양성을 더 가치 있게 여기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획일성의 하나님이 아니라, 다양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자체가 바로 다양성이 창조의 원리가 되도록 하는 근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양성이 극단으로 치달아 상호 배타적이 되고 서로 연결해주는 통일된 어떤 것을 잃어버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한 몸으로서의 통일성과 여러 지체와 은사의 다양성이 조화롭게 보존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4-6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양한 지체가 있지만, 몸도, 믿음도, 세례도, 성령도, 하나님도 하나라고 하면서 사랑의 끈으로 하나 됨을 잘 유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성, 그리고 통일성 있는 다양성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 다양한 교파와 교단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 통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서로 다름을 너무나 수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와 조금만 달라도 무조건 배척하고 무시해 버립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관용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교파나 교단을 한 형제자매로 묶는 동일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함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