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많은 과학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 자신들의 학업과 연구 활동 등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과학자들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람들이기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쉽게 신앙과 과학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과 과학이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삶 구석구석에서 창조론과 진화론과 같은 문제들에 부딪히고 결코 두 진영이 타협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과학을 얼마나 신뢰하십니까? 인류는 자연주의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이 발견한 과학적 진리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고 우리의 삶은 더 편리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관하여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면, 과학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학이 가지고 있는 그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주의 세계관이란 무엇일까요? 자연주의 세계관이란 세속적이고 인간주의적인 세계관으로 하나님의 존재나 초자연적인 세계를 거부하는 세계관을 말합니다. 우주 만물은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소멸되며, 모든 역사를 우연의 산물로 보는 것입니다. 사람 역시 독특한 의미와 목적에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운행 법칙에 따라서 생성된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세계관입니다.
현대인들은 마치 과학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줄 것처럼 믿고 살아가지만,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과학을 통해 발견된 과학적 진리라는 것들은 기능적 지식은 제공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과 역사의 근원과 운명에 대한 답이나, “무엇이 선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가?”에 대한 답이나,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인가?”가에 대한 답과 문제 해결은 과학이 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벌이는 활동이기 때문에 참된 능력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거나,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즉, 과학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과학이 가진 한계 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도구입니다.
과학자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그것이 과학적 진술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순 안에 갇히는 것입니다. 과학은 관찰, 예측, 가설, 실험, 입증, 응용이라는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될 때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실험은 과학적 방법론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술이 과학적 진술이 되려면,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 거시계와 미시계를 포함한 우주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실험을 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실험을 해보지 않는 이상 그 주장은 과학적 주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가 우주의 모래알 보다도 작은 지구에 살면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학적 진술이나 증명이 아니고, 그 사람의 신념적 진술인 것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계신지 계시지 않는지 증명해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자 칸트가 말하는 것처럼 과학은 인간의 감각으로 경험 가능한 세계만을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신앙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이지 과학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이 앞에 붙으면 조금 더 그것을 신뢰하게 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과학적’이라고 하면 의심보다는 수용하는 쪽을 택합니다. 과학이라는 것을 맹신하는 것에서 오는 결과입니다. 성경과 과학은 같은 차원에서 대등하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진술을 담은 책이 아니라 신앙적 진술을 담은 책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