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는지, 나를 사랑하시기는 하는 건지 회의를 느끼게 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나에게 고통이 찾아오거나, 그와 더불어 계속해서 다른 문제들도 한꺼번에 찾아오고, 그 고통은 해결되지 않고 계속될 때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 이건 세상 사람들에게도 통용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우리에게 의인은 고난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되면, ‘의롭고 선한 사람에게 왜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이 오는가?’라는 질문은 다시 ‘의인은 실패를 거듭하는데 악인은 왜 세상에서 잘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가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 이런 상황들이 올 때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는 고난은 2가지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형벌로 오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 잘못하지 않았을 때 고난이 오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을 때 오는 고난에 대해서는 그 고난은 불공평하다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성경의 인물인 욥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온전하고 정직하다고 하는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더 의롭게 살게 하시려고 훈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의롭게 살았다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고난을 주실 수 있냐고 욥을 더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의롭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욥에게도 고난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욥기의 메시지 중 하나는 욥이 당한 고난은 여전히 의로운 것이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의 고난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선물로서 우리를 성숙하고 고결하고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교육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 죄의 대가로 고난이 오는 경우
또 다른 경우는 죄의 대가로 오는 고난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징계와 채찍으로 오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죄를 지었을 때,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었고 다른 아들인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하여 많이 참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는 언제든지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징계가 필요할 때에는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로 인하여 우리의 죄를 깨닫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며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6절의 말씀은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0절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한 징계로 고난을 주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증거이고, 징계로 오는 고난 역시 괴로운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평강에 참여하게 하므로 유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