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일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제자로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염원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기도문은 사도신경과 십계명과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전통 가운데, 주기도문뿐만 아니라 사도신경과 십계명은 아주 중요한 핵심을 담아낸 대표 문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사도신경이나 십계명과는 달리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되게 해 달라는 기도문입니다. 사도신경은 ‘지금 내가 무엇을 믿는가?’를 나타낸다면, 십계명은 ‘그 믿음 안에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주기도문은 ‘앞으로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어떻게 기도하고, 무엇을 바래야 하며, 무엇이 달라야 하는지를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제자의 기도는 남달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 주기 전에, 내용보다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마음가짐 말입니다. 먼저는, 외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은밀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사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주문 외우듯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 만유의 주이시며 만홀히 대할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달라야 합니다.
- 제자의 기도는 자라나야 합니다.
제자의 삶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제자는 본연의 모습에서 스승의 경지까지 이르러야할 암묵적 하명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큰 화두를 던져 줍니다. 첫째, 기도의 주어엔 1인칭이 없습니다. 둘째, 관점이 세상이 아니라 천상(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셋째, 일상적이지만, 전혀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는 이 땅의 것에서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돌릴 것을 종용합니다. 갓난아이로 태어나 어른이 되어 원숙한 노인 되듯, 제자도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하나님의 형상까지 말입니다.
- 제자의 기도는 삶으로 완수해야 합니다.
제자는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삶으로 증명해 낼 때, 진정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따라서 제자는 기도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완벽히 수행하여 하산할 때까지 말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어떤 역사신학자는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교회가 태동된 이래로 언제나 사랑이 강조되었고, 언제나 사랑이 실천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헌데 이와 아울러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용서’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용서를 ‘나와 남’의 관계를 넘어, ‘나와 하나님’의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해낼 수 없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는 그 고통을 넘어설 때 발현되어집니다. 해낼 수 없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삶에서 완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