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체포 장면입니다. 흔히 우리가 예수님의 체포 장면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가장 먼저 떠 오릅니다. 그 대신에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에 그중에 한 사람이라는 정도로 무명으로 소개하고 있는 베드로의 이름을 확실하게 소개하면서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의 손에 칼이 들려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그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 베드로는 칼을 빼었을까요? 3절은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왔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칼을 차고 있던 베드로가 반사적으로 칼을 빼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친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칼을 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환경이 칼을 쓴다고 같이 칼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과 같은 것을 하지 말고 다른 것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칼이라고 하는 도구, 칼을 잘못 사용할 때 일어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칼을 거두라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그 귀를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치유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치유를 돕는 자들, 통로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회복하시고 치유하시는 사역 속에서 사용하시는 도구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잡으러 몰려온 사람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그럴 때 그들이 대답합니다. ‘나사렛 예수라.’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럴 때 그들이 뒤로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고 말합니다. ‘내가 그니라.’는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계속하여 드러나고 있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십니다. 특별히 이 자기 선언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자기 선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속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4절에,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예수님은 앞으로 될 일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는, 11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이 시간을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상대하실 때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칼과 몽둥이를 상대하셨습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 오순절이 되었을 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날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 땅에 계실 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시고, 나의 메시아가 되셔서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을 때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십니다. 그리고 임한 그 성령께서는 성도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살아갈 때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세상이 붙든 칼로 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성령을 누리는 선창의 모든 가족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