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절에 보면, 장차 환난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환난을 감하지 아니하시면 육체가 구원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기에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다고 말씀합니다. 29절에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라고 말씀합니다. 가까이 오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30절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이 일하셔서 그렇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31절에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주님은 하신 말씀을 다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계속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함께하시지만, 문제는 우리가 종종 그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삶이 익숙해지면, 오히려 무뎌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잠에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삶을 예를 통해 설명합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깁니다. 청소해야 하는 사람은 집을 깨끗하게 해야 하고, 수리하는 사람은 잘 고쳐놔야 하고, 그리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갑자기 돌아왔을 때 문지기의 역할은 문을 열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주인은 여행을 떠난 자가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여행을 떠난 그 시간에 종들은 잠들고 싶은 유혹을 마땅히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지금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삶에 어려움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잠들도록 유혹하는 삶과 상황에 우리가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 주인이 다시 오는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경계하실 정도로 영적 졸음이 우리 삶에 오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데, 외부적으로 우리를 미혹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른 것에 미혹 당하기 시작할 때 영적 졸음이 몰려온다고 말합니다. 미혹은 길을 잃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여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우리의 초점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영적 졸음이 몰려오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믿음의 나태함과 게으름 때문입니다. 36, 37절에서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이 저물 때든, 밤중이든, 닭 울 때든, 새벽이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왔을 때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33절에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35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은 역동적으로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에게 영적 졸음이 몰려오는 이유는 우리 마음 안에 일어나는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입니다. 미래의 일이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2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른다는 것에 초점을 두며 살아갈 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래보다는 오늘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삶이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목장 질문]
- 익숙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영적 민감성이 무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중에 하나님의 임재나 일하심을 특별히 민감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반대로, 영적으로 무뎌지거나 ‘졸음’이 찾아왔던 시기는 언제였고,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하셨나요?
- ‘주님은 우리를 깨우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자를 만나러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 속에서 미혹, 나태함, 두려움 중에서 여러분이 가장 도전을 느끼는 영역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계시는지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