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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연구

2025년 8월 20일 수요성서연구

본문: 갈라디아서 3장 1-9절

제목: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

우리는 “은혜받았다.”라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이런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문제는 지속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감격하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그런데 곧 식어버리고, 이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단을 지속하지 못합니다. 지속되기 위해서는 감격이 감성적인 현상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로 인한 감격과 기쁨이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정의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 혹은 감정적인 소비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설교를 들으며 감격하고, 찬양 중에 눈물이 흐릅니다. 때로 도전이 생겨, 이제는 달리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쉽게 사라집니다.

 

그 감격을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성경에는 어떤 의미로 나타나 있는지 풀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감격하는지, 그 요소는 무엇인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성경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객관화된 작업이 행위로 옮겨져야 합니다. 사랑해야겠다고 느꼈으면, 사랑의 행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지식화되었으면 그 지식이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적인 이해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앗아갑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른 가르침에 넘어간 이유는 믿음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모른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명한 체계로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의지로 마음에 간직하지 못해서 흔들리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를 똑바로 보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재정립하라고 요구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받았는지,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받았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의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성령의 역사도 나타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주시기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이것을 선명히 알고, 의지적으로 고백해야 율법주의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옳아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우리가 선한 행위를 했기에 가슴이 뭉클하고, 감격이 생기며, 기쁨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 우릴 받아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제물 되신 아들이, 우리에게 의를 주셨기에, 하나님 자녀라는 권세를 누립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그래야 은혜받은 것이 제대로 우리 삶에 열매로 나타납니다. 9절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십자가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거기서 얻은 감격과 기쁨과 감사와 결단을 끝까지 믿음으로 가지고 나아가셔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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