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지식을 머리로 받아들인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이 내 삶을 움직이고 다스려 나로 하여금 분명한 반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는 반응이 바로 충성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의 자리가 간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삶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간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재판석에서도 간증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삶에 흔들리지 않는 충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1장부터 26장까지의 내용이 오늘 말씀의 전체 배경입니다. 3차 전도 여행을 마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가면 바울을 죽이려고 벼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소개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하여 묶인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5, 26장은 그 지역을 지배한 로마 총독 베스도와 유대의 분봉 왕 아그립바 앞에서 심문받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자신의 신념에 충성하며 살았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정오에 해보다 더 밝은 빛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소리를 듣습니다. 자신이 박해하던 이유가 되는 예수님과 대화합니다. 그가 예수님이신 줄 알게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경험입니까? 그럴 때 바울은 그 사건 이후로 그의 삶이 바뀝니다. 그때로부터 바울은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22절에 보면,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은 구약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이 믿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예수님의 이야기는 유대인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선지자들과 모세를 통해 반드시 되리라고 믿었던 그 메시아로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지만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랬기에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그분이야말로 구약에서 말하는 고난 받는 종, 채찍에 맞으시는 종,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신 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복음이 분명하니까 그분께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회심 장면을 통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원래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충성했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 충성했던 사람입니다. 대제사장들에게 충성했던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이 권한을 주었다는 것은 사명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그들이 부여한 사명에 충성하며 살았습니다. 그랬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만남은 바울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믿고 행동했던 모든 가치를 송두리째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바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듣게 됩니다.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그 부르심, 소명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가서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예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질문 : 바울의 충성이 오늘 나와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