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2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5절에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여정이 훌륭한 결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6절에 보면, 성령이 소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이곳에 갑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무시아까지 갔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가고자 애썼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보입니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10절에 바울이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이 과정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로는 막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인도하심이라고, 부르심이라고, 막으심이라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때로는 막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열심히 전진하고 있는 바울을 막으셨다고 할 때, 이 지시를 누구로부터 받습니까? 6절에는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7절에는 예수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환상을 보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랬다고 말합니다. 전체를 보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다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여정에 삼위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과 사탄이 말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내가 열심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을 때 전진하지 못하도록 막힌다면, 우리는 누가 막는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사탄이 막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바울이 직면한 그 순간 순간마다 그 말하시는 분이 성령인지 사탄인지 어떻게 분간했을까요? 오늘 사도행전에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에게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영적 분별력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영적 분별력은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내 삶에 일어나는 일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바울 일행은 삼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냐로 넘어갑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간 것이니까 얼마나 기대가 크겠습니까?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갔다가 루디아를 만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온 집이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16절에 또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이번에는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납니다.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인들이 수입이 끊기게 되자 고발합니다.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많은 매를 칩니다. 그리고 옥에 가둡니다. 성령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온 바울 일행은 기도할 때 모든 것이 순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도하는 중에 있지만, 어려움을 당합니다. 잘못된 고소로 매를 맞습니다. 감옥에 갇힙니다. 발에 차꼬까지 채워졌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바울은 그런 자리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습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때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지고 있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보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빛 되신 주님의 일하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간수와 그 가족을 구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