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라보라. (11-13)
12절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13절 끝에도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라본다는 말은 그냥 쳐다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마음으로 목적지를 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날을 내 마음이 찾고 기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야 하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13절에 보면, 그곳은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 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온통 자기의 의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의가 있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충만한 곳입니다. 물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에 그곳에는 12절에 보면,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에 충분한 기쁨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의를 누리는 곳입니다. 참된 공의를 누리는 곳입니다.
- 힘쓰라. (14-16)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신의 삶과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베드로는 힘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힘써야 하겠습니까? 14절에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점이 없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흠도 없다고 할 때는 비난 받을 일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일상 삶의 자리에서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강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평강 가운데라는 말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앞에 나타날 때는 지금 여기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을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누리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복음이 가져다준 은혜를 가지고, 그 복음이 가져다준 삶의 방식으로, 그 복음이 가져다준 삶의 도전을 하며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화의 삶이라고 부릅니다.
- 자라가라. (17-18)
베드로는 17절에서 불의한 자들의 유혹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불의한 자들은 말씀을 억지로 푸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분명하게 붙들고 있는 이 믿음의 진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붙든 진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밖에 더 놀라운 것, 성경 말씀밖에 더 위대한 것이 있을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 이단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되면,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야 합니다. 은혜를 깨달았다는 것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이 내 안에 심기어 졌다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하신 일이 크고 놀라운 일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가장 기쁜 소식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더 이상 나의 의를 추구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더 이상 고아처럼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성도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일에 자라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