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존재 정체성을 말해주는 단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삶에서 예수님 때문에 생명을 얻은 삶, 죄인이라 불리던 삶에서 의인이라 불리는 삶,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죄의 사슬에 묶여 끌려다니며 살던 삶에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삶,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사는 삶, 하나님과 화해하여 하나님 앞에 마음껏 달려가며 사는 삶, 그래서 점점 더 거룩해져 가는 삶, 열매 없는 삶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인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이런 정체성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먼저, 베드로는 우리는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낸 목적을 1절에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실한 마음이라는 말은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마음, 순결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태양으로 비출 때 다 드러나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살아갈 때 마음이 순결한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행동보다 먼저 되어야 할 것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행동을 바르게 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 행동은 가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생각나야 하겠습니까? 2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첫 번째는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러 사용하신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 입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먼저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두 번째는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시켜서 주신 계명입니다. 사도들의 입을 통해 선포된 말씀은 곧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생각나고 기억되어 우리 삶을 움직이는 기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 생각이나 내 경험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때가 되면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 조롱하는 자들이 하는 말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말합니다. 만물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그냥 그대로 있다고 말합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창조된 이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없이도 이 세상은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재림과 같이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재림이 없기에 예수님의 심판 또한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합니까? 그들은 일부러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일부러 잊으려 할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감추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 홍수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수 사건을 보십시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덜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고 내 인생에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