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를 들을 때 깨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안에 갇혀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단호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범죄, 지옥, 어두운 구덩이, 심판, 홍수, 멸망, 무법, 불법, 형벌과 같이 심판을 받게 될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가오는 심판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거짓 교사들을 향한 심판은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순히 심판 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용서, 보존, 의인, 심령, 건지신다는 단어도 계속 등장합니다. 이것은 구원의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베드로는 두 가지 개념을 대비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로 구분합니다. 경건한 자는 주관하시는 이를 신뢰하며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자와 자기 의에 빠져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처럼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불의 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의 삶에 대해 그리고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세 가지 사례를 들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 아래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강력한 존재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숭고한 의무와 그 위치를 망각하여 저버리고 자연을 거스르는 음행의 결과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노아 시대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의인이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기준이 하나님이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아가 살아가던 삶의 환경은 노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습니다. 사람이 부패한 정도가 아니라 그 땅이 부패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부패한 환경 속에서 노아는 의로운 삶을 위해 몸부림친 사람입니다.
세 번째 사례는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소돔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심판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이야기가 두 천사가 롯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롯이 지나가는 두 천사를 영접하고 자고 가라고 집으로 모십니다. 그러나 그 성 사람들이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그 손님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동성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며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롯을 불 심판으로부터 구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에 경건한 사람과 불의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사람은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감각적으로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심판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노아와 롯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최종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호를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방주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에서 도망쳐 나오듯이 도망쳐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요? 우리의 안전한 장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임할 미래의 심판에서 우리는 이미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의 다가오는 심판은 확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이루신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날에 반드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