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_builder_container type=”flex” hundred_percent=”no” equal_height_columns=”no” menu_anchor=”” hide_on_mobile=”small-visibility,medium-visibility,large-visibility” class=”” id=”” background_color=”” background_image=”” background_position=”center center” background_repeat=”no-repeat” fade=”no” background_parallax=”none” parallax_speed=”0.3″ video_mp4=”” video_webm=”” video_ogv=”” video_url=”” video_aspect_ratio=”16:9″ video_loop=”yes” video_mute=”yes” overlay_color=”” video_preview_image=”” border_color=”” border_style=”solid” padding_top=”” padding_bottom=”” padding_left=”” padding_right=””][fusion_builder_row][fusion_builder_column type=”1_1″ layout=”1_1″ background_position=”left top” background_color=”” border_color=”” border_style=”solid” border_position=”all” spacing=”yes” background_image=”” background_repeat=”no-repeat” padding_top=”” padding_right=”” padding_bottom=”” padding_left=”” margin_top=”0px” margin_bottom=”0px” class=”” id=”” animation_type=”” animation_speed=”0.3″ animation_direction=”left” hide_on_mobile=”small-visibility,medium-visibility,large-visibility” center_content=”no” last=”true” min_height=”” hover_type=”none” link=”” border_sizes_top=”” border_sizes_bottom=”” border_sizes_left=”” border_sizes_right=”” first=”true”][fusion_text]
베드로는 세 번이나 강조하면서 말합니다.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왜 지금 이 말을 하는가 하면, 14절에서 베드로는 이제 곧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지금 하는 말은 마치 유언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가 남기는 유언의 핵심을 ‘그들로 생각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삶을 살아갈 때 그들 마음 안에 계속해서 생각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마음이 그들 삶의 기반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무엇을 항상 생각나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12절에 보면,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건전한 교리, 그리고 성숙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는 늘 생각이 나야 합니다. 13절에 보면,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생각나게 함으로 너희를 일깨우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옳은 일이라는 말에는 이것이 베드로가 가진 사명, 마지막까지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이 할 일은 중요한 것이 자꾸 생각나고 생각남으로 인해 우리가 나태하려고 할 때나, 연약함에 갇혀 있을 때나, 환경에 휘둘릴 때나, 깨어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깨워야 합니까? 나는 얼마나 죄인이었는가? 그런 죄인을 향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으로 나에게 다가오셨는가? 그리고 그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셨는가? 나는 얼마나 큰 빚을 진 자인가? 이런 것이 자꾸 생각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3, 14절에서 장막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은 장막입니다. 텐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텐트에만 머무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오늘 본문에서 장막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삶은 잠깐 있다가 가는 것인데, 우리가 자꾸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텐트의 삶을 잘 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영원한 집에 가서 누려야 할 것을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오십니다. 다른 번역에는 그리스도가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능력 안에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이 이야기는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에는 사람들이 신화를 만들어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있는 것처럼 만들어 사람을 높이고 숭배하려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진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자신이 이런 능력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변화산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베드로는 이 소리를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은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진리, 성경의 진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당시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보고 들은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샛별이 뜨면 어둠은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샛별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 이 땅의 모든 어둠은 떠나가게 될 것이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지금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들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에 그 예언대로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이 오실 것을 알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성령이 알려 주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가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fusion_text][/fusion_builder_column][/fusion_builder_row][/fusion_builder_conta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