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살아갈 때 고백하는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내가 확신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안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가장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의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주어진 것입니다. 내 행위로 말미암아 가진 의, 즉 나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잣대, 하나님의 기준을 가질 때 주어진 믿음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된다고 2절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을 알 때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이것을 베드로는 신기한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또한, 이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신기한 능력으로 일하시는 것은 우리의 삶이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따라가는 삶을 살지 않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히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붙들고 살아감으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때 더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더하기를 해야 합니다. 빼기를 하면 안 됩니다. 7절 끝에 보면, 더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하라는 말은 앞에 나온 8가지 성품에 모두 해당하는 말입니다. 믿음에 덕을 더해야 합니다.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합니다.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합니다.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합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해야 합니다.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이처럼 더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여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누려야 합니까? 그래야 오늘 삶의 현장에서 잘못된 것에 끌려다니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삶은 끊임없이 내 안에 부족한 것을 더하는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족한 것이 더해지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동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노력해야 하지만, 그 노력은 복음의 은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가진 이 은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게 하여 주는 네 가지 동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동기는 풍요로운 삶, 열매 맺는 삶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기는 열매 맺는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두 번째 동기는 부정적인 삶을 깨트리기 위함입니다. 9절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상을 떠나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우상이 있어서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동기는 계속 움직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0절입니다. 자전거를 탈 때 페달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인 도전이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계속 페달을 밟을 때 우리는 은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네 번째 동기는 영원한 나라에 대해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11절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분명한 약속에 대한 기대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삶을 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