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9장과 10장은 2차 포로 귀환 이후의 일입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는 영적 구심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럴 때 에스라가 귀환하게 됩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영적 공동체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그들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2절에 그들 자신을 가리켜 거룩한 자손이라, 거룩한 핏줄이라, 거룩한 씨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가지고 살아야 할 가치체계,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거룩함입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더럽히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여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기준안에 머물러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런 거룩한 자손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소개합니다.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입니다. 재건 공동체가 성전을 세우려고 할 때 방해가 있고 낙심할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나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헌신할 때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의 삶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는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이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결혼했을 때 아내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공동체에 합류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우상을 버리지 않고 결혼함으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안에 우상이 들어오게 된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방인과의 결혼 문제는 결국 우상숭배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에스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에스라는 권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수염을 뜯으며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애통한다는 것은 슬퍼하는 것입니다. 애통은 남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자신의 죄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인지를 발견하게 될 때 가지는 마음이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실제로 내가 죄를 짓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내 안에 죄악된 모습이 비춰질 때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애통할 때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아내들과 자녀들을 버리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회개의 삶이 일어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