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8:1~9
제목: 신묘막측하신 하나님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사귀는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안에 내 곁에 언제나 눈동자 같이 지켜 보호하여 주시는 친숙하신 분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그토록 친숙한 하나님을 우리는 온전히 잘 알고 그분과 사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규명하고자 온갖 애를 써왔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신묘막측하시다”입니다.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시다”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한때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셔’라고 규명하기보다, 규명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규명하면 그것을 부정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신학 용어로, “부정신학(否定神學)”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한 마디로,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으로 다 이해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구전으로, 그리고 기록물로 전수된 성경으로 말미암아 더욱 뚜렷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그러나 꽤 많은 이해로 하나님께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은 오늘은 3가지로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본문 1절에서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땅과 하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모든 만물의 온전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답다는 표현은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 부족함 없이 온전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자연은 조화가 있습니다. 그 조화는 온전함을 나타냅니다. 부족함이 전혀 없어서 완전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분이시기에, 모든 만물이 완전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고 관리되기 위해서는 아주 섬세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도 수많은 부속품이 완벽하게 들어맞고 작동되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고 금세 고장이 나서 부서지게 됩니다. 그렇듯 각각 존재하는 것이 완전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완벽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영화와 존귀의 관과 직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을 다스리게 하셨고, 그 모든 것을 관장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작동되려면 완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할 뿐만 아니라, 완벽하셔서 한 치의 오차도 문제도 없도록 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친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찌 완전하고 완벽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찌 존재하는 것마다 다 조화를 이루며, 혼자 존립하지 않고 모두 어우러짐으로 아름다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온전하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시는 친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피조물은 서로를 해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평화가 있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룹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세 위격이 하나라로 친밀한 관계를 이루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