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은 의도적으로 무지합니다. (1:18-23)
의도적으로 무지하다는 말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알 수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존재가 부패하고, 죄로 오염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죄악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악한 것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죄 가운데 빠진 인간의 본성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열정적으로 반항합니다. (1:24-32)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위가 내가 순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기꺼이 그분께 항복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계시하신 진리를 지속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명령을 열정적으로 반항하고 저항하며 거부합니다.
세 번째로는 인간은 죽음으로 판결받습니다. (2장)
인간의 의도적인 무지와 열정적인 반역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단 하나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때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의 권위를 거부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에게 죽음의 선고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담은 즉각적이고 육체적인 죽음으로 죽지 않았지만, 영적 죽음으로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죄를 고백해야 할까요? 왜 우리는 죄인이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신자, 구원받은 인간의 상태는 범죄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범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선과 의를 행할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원죄에 의해 물려받은 죄책과 오염을 타고 태어나는데,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순간 칭의로 말미암아 죄책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나 부패한 본성인 오염과 부패의 문제는 여전히 그 사람, 곧, 신자들 안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중생을 통한 하나님의 새 생명, 새 본성을 주심으로써 죄의 절대적인 지배가 종식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의 영향력, 죄의 권세, 죄의 세력, 죄성은 남음으로 상대적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 말은 그 죄의 영향력에 끌려가면 죄를 짓게 되고, 그 죄의 영향력을 저항하고 물리치면 죄를 짓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죄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죄가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말입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를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죄의 사슬을 끊으셨음을 믿을 때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죄를 직면할 수 있는 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를 향한 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죄가 미혹할 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여전히 죄를 저항하지 못하고,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는 연약한 자입니다.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