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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하나님을 증명하고자 하는 논증의 방법들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을 통해서도 인간은 하나님을 완벽하게 증명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이성과 모든 지성과 감각을 뛰어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명확하게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암시하는 힌트들은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불신자들과 기독교 신앙의 접촉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접촉점을 잘 활용할 때 기독교 신앙과 복음을 변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접촉점은 모든 사람은 절대적인 만족과 행복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또는 절대자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 갈망은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갈망을 채움 받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돈이나 쾌락이나 명예 또는 인기나 권력 같은 우상으로 채웁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론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우리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쉴 때까지 요동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첫 번째 접촉점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은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그런 갈망이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갈망은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 접촉점은 사람은 한계와 죽음에 대한 절망과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이기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갈망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과 한계를 마주하게 되고는 절망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그들의 가치관을 크게 흔들고 무너지게 합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신앙을 갖거나 철학적인 구도의 길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고 그 길을 걸으며 인생을 깨달으려 합니다.

두 번째 접촉점은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을 직시하게 하고 내가 나의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인생이 나의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살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임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고도 말씀합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염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영원하신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렇기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공포와 염려가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전해주어야만 합니다.

세 번째 접촉점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윤리와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옳고 그름과 선과 악, 의와 불의한 것을 규정하는 규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규범이 깨지면 분노나 상실감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윤리나 도덕의 보편성을 거부하고 상대주의를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나라가 의롭고 아릅답다고 하는 것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아름답고 선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나은 자녀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죽이는 것도 아름다운 행위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선한 것과 의롭다고 하는 것에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도덕적 보편성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양심이라는 것을 주셨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심으셨습니다. 물론 양심이 죄로 인해 무뎌졌지만 여전히 사람의 양심은 선악이 무엇인지를 자기 자신에게 가르쳐줍니다. 양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변증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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