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청소년부에 있는 학생이 저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질문은 구약의 하나님은 너무 엄격한 나머지 잔인하고 무서운 하나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가나안 정복 사건을 보면,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멸하되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죽이라고 명령하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구약에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과 신약에 보이는 하나님의 모습이 같은 하나님의 모습이 맞나요?
이 질문은 하나님의 성품과 성경의 통일성 등 다양한 문제와 연결되어져 있는 질문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종교 다원주의자들 중에는 기독교가 유대교라는 부족 종교로부터 진화 과정을 거쳐 세계 종교가 되었고, 그 진화 과정에서 상호 모순되는 내용들이 성경을 채우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의 모순점을 강조하여 성경의 신뢰성과 기독교의 유일성, 하나님의 독특하심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창세기 1:28에 보면, 하나님이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즉 구약의 하나님 역시 사람과 만물에게 복 주기 기뻐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였을 때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따라 죄인을 심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결국 구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의와 거룩함이 결핍된 사랑만 있는 하나님도, 사랑과 자비가 결핍된 의와 거룩만 있는 하나님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여호수아와 사사기의 하나님의 엄격하신 모습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죄악이 가득 차 있을 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가나안의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 등 심각한 죄악 속에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군사적인 정복 전쟁을 좋아하시는 호전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함과 철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정복이라는 하나님의 심판 사건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복 사건은 그것과 함께 세계 복음화의 실현을 위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준비시켜 가시고, 이스라엘이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고 중생해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게 닮아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과정에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철저히 쳐 복종시키고 몰아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도우십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었으며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과 하나님의 다른 점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라고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도덕적 완전성을 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악을 미워하시는 성품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대로 하나님이 엄격한 분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엄격함만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여 관대함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