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 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나의 죄를 해결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아직 그것으로는 내 죄가 다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를 할애하여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그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건이 사실이라는 것을 가장 잘 말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본 사람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고린도전서 15장 1절에서 11절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활을 본 사람들을 열거한 다음에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다시 말합니다. 고린도 사람들 가운데 자신들이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한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가지고 너희도 부활한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 번째,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나는 날마다 죽음의 위험을 자초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내 삶의 환경 속에 어렵고 위험한 일이 일어날 때 도망가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 그 삶을 살아낸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부활의 능력, 부활의 확신이 삶의 자리 가운데 나타나는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도 부딪치며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속지 말라.
32절에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일이면 죽을 텐데 마음껏 먹고 마시자.’ 회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이런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분명한 미래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에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패거리에 속하게 되면 훌륭했던 삶의 방식이 망가집니다. 부활을 믿지 않고 오늘 내 유익만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세상적 사고방식으로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깨어 의를 행하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명령하는 어조로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말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자꾸 흔들려 죄를 짓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깨어 의를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약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하나님의 자원의 풍성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활을 믿는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실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을 내가 의지하고 누릴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어 의를 행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