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목하는 도전
베드로와 요한은 제 구시 기도시간이 되어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4절에 보면, ‘주목하여’라고 말합니다. 주목하다는 말은 눈여겨보았다는 말입니다. 사실 구걸하는 사람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늘 특별히 그 사람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어떤 마음이 일어나 주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감동을 주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등장하는 오늘 베드로와 요한이 주목한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삶에 영적인 도전이 일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도전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내 안에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내 귀에 들리기 시작할 때, 내 마음에 닿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필요가 있는 곳에 주목하는 삶, 문제가 있는 곳에 주목하는 삶, 어려움이 있는 곳을 주목하는 삶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이 주목할 수 있었던 힘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도에 있습니다.
- 이름의 도전
우리가 영적 돌파를 향한 도전이 있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 안에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도전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자신의 힘이나 노력으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주려고 했던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할 때 내게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베드로는 나는 은과 금이 내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이 표적으로 인해 몰려들어 놀라니까 베드로가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이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베드로는 그 힘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는 이름이 그 사람의 모든 인격을 대표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지신 치유의 능력, 회복의 능력, 권세가 일어나 걷게 한 것입니다.
- 성전의 도전
오늘 이 표적의 핵심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걷게 되었다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오늘 사건의 핵심은 8절입니다.
행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여기에 보면,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베드로와 요한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원래 성전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자입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을 때 그는 성전에 드나들 수 있었던 베드로와 요한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마음껏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공간적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의 궁극적 회복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것에 멈추지 않습니다. 궁극적 회복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