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이 세워나갔던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오늘처럼 조직화하고 제도화된 교회였을까요? 건물이 있고 주차장이 있고, 교회학교가 있고, 부서가 따로 있는 그런 모습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연구한 책들을 보면, 당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가족,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모이는 교회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관계성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성도와 성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각자가 서로 몸의 지체로서 함께 누리는 교회였습니다. 반면, 오늘 현대 교회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면서 제도화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교회가 체계를 갖추고 조직을 꾸리며 여러 가지 전통을 만들다 보면, 원래 주님께서 만드셨던 원형 가운데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놓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점점 체계화되고, 조직적이되어 사람의 의도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한 번 조직화되면, 그 체계를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보니 주님이 머리인 교회가 아니라 사람이 머리인 교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예수의 생명이 넘쳐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성도들 각자의 삶에 예수의 생명이 흘러 그 생명으로 사는 자들임을 고백하며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또한 모여서 예수의 생명을 힘입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는 단순합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는 절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전통이라는 것에 의해 점점 교회의 원래 모습을 상실해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 아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관계성입니다. 초대교회 때도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는 찬송가라는 형식과 순서에 의해 드려졌다기보다는 서로 섬기고 나누고 격려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예배는 보통 집에서 드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처럼 앞을 바라보며, 옆 사람이 누가 앉았는지도 모른 채 드리는 나 혼자의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서로 둥글게 앉아 마주 보며 서로의 삶을 나누고 교제하며 다양한 말씀을 나누며 삶의 결단을 가지는 예배였을 것입니다. 이런 예배는 성도 상호 간에 권면이 일어나며, 격려가 있는 모임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지 않으면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서로’라는 단어를 거의 60번이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모임이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생각하며, 서로를 세워가는 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선창교회도 이런 공동체로서의 관계성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일 낮 예배로만 되지 않습니다. 성도 모두가 소그룹에 속해야 합니다. 함께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 들어 줄 수 있고, 격려할 수 있는 숫자여야 합니다.

주일 예배로는 도저히 관계 속에서 드리는 예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소그룹으로 흩어져 서로 관계 속에서 드리는 상호 권면, 상호 격려가 있는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주일 낮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 낮 예배가 가져다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흩어져 관계성을 누리는 성도들이 함께 더 큰 공동체에 속하였음을 고백하고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주일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성도가 같은 방향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선창의 가족들이 관계성 속에서 공동체를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