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 음성을 듣는 지금 요한은 밧모섬에 있습니다. 그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유배당한 곳입니다. 이 섬은 죄수들이 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이 밧모섬에서의 삶은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요한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음성을 통해 요한은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심에 응답하여 올라가는 시간을 통해 앞으로 될 일과 하늘의 일들을 함께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실 때 어떻게 올라가야 하겠습니까?
1절 처음에 보면,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번역하면 ‘하늘에 열려져 있는 문’입니다. 우리가 올라가서 열어야 하는 문이 아닙니다. 이미 열려져 있는 문입니다. 누가 열어 놓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 놓으신 문입니다. 주님이 열어 놓으신 그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올라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열려 있는 문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로 나아가는 통로가 열려 있는 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곳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원을 내 삶으로 가지고 와서 누리는 통로가 바로 열려 있는 문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서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공급하심 안에 들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셔서 보게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왜 주님은 요한에게 올라오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바로 뒤에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보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올라오는 것과 마땅히 일어날 일들과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땅히 일어날 일은 하늘의 일입니다. 온 세상을 회복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땅의 일에 매여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기 전에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좌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4장에만 보좌라는 단어가 14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보좌는 왕이 앉는 의자입니다. 사실 그 당시 보좌는 로마 황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가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며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라오라고 하시면서 그 보좌에 로마 황제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앉아 계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의 통치자, 온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줍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리로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2절 처음에 보면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라고 시작합니다. 이 말은 ‘내가 성령 안에 있었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일하실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이 나를 움직이실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보좌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감정이나,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내려놓을 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에 사로잡힐 때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일하심을 인정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