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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이런 니고데모에게 궁금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느낀 예수님을 평가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이런 표적을 행할 사람이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게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특이한 것입니다. 그동안 살면서 가졌던 방법이나 전략이 아니라 니고데모가 듣기에는 전혀 생소한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 태어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전혀 새로운 출발이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니고데모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두 번이나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어떻게’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위로부터 태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머니의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입니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육체적으로 태어난 것을 육체적 출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태어난 것을 영적 출생이라고 말합니다. 출생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3절과 5절에 보면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물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시고 역사하실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나는 것, 곧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 9절에 보면, 그렇다면,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어떻게’라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성령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일이 가능합니까? 질문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는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만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다시 하늘에 올라가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이 일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죄의 형벌로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죄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삶이 곧 하나님께는 죄입니다. 이런 자들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나의 죄를 대신하여 달리셨음을 믿고 고백할 때 그 죄가 용서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일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을 얻게 됩니다.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보고 누리게 됩니다. 이 모든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한 것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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