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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들이 의미없고 가치없는 일이라면 절대로 능동적이며 희생을 감수하기까지 최선을 다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이든, 만남이든 이유가 분명하고 목적이 분명할 때 그 만남은 지속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모인 곳일까요?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올 때 다른 사람과 가진 인맥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일과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사람은 내가 얻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나오지만, 그것은 진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존재 이유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 처음 교회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가 이런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초기에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논쟁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때로는 랍비처럼 가르치기도 하시고, 때로는 절대로 고칠 수 없는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도 하시고, 때로는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도 베푸는데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것이 당시 예수님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때 제자들은 자기들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말들을 다시 전합니다. ‘세례요한이나 선지자 엘리야라고 하더이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십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지금 나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너희, 지금 나를 따라 다니고 있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도 바로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것이 바로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계기입니다. 여기서 반석은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제자들을 향한 이 질문은 오늘 교회를 향하여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누구라고, 교회가 무엇이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물으십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우리는 왜 여기에 모여 있습니까? 우리는 왜 서로 연결되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회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단어는 당시 사회에서 사용하던 단어였습니다. 광장에서 어떤 논의를 해야 할 때 리더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밖으로 나와 모이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공적인 일을 해야 할 때나 군사를 모집할 때 불러 내는 것을 에클레시아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에클레시아는 어떤 목적을 위해 불려 나온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공인되면서 로마인들이 큰 건물을 지어 교회로 사용하면서 교회는 장소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단어가 공공건물이나 집회장을 뜻하는 키르셰라는 독일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영어 Chruch(교회)도 거기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단어로 대체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개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는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으로 바뀌어 전혀 다른 개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 이후에 성경 번역자들은 교회를 키르셰로 번역하지 않고 회중이라는 단어를 다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에클레시아가 다시 회복되어 교회에 생명이 공급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그 대답은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까?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 구원자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믿는다는 것에만 초점이 있지 않고 그 믿음이 나의 삶의 반석이 되어서 모든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삶의 방향과 추구하는 가치, 의미가 이 믿음의 고백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 방황하는 모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야 할 때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출발하는 선창교회가 존재 목적을 분명히 고백하며 나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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