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등장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결정적으로 개입하는 날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심판을 선언하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궁극적인 심판의 날을 향하여 가는 여정입니다. 아모스를 통해 계속해서 심판을 선포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돌아오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심판이 일어나고 멸망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남은 자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심판 때에 잘 견디고 이기는 자는 끝까지 남게 되는데 이 남은 자를 향한 마지막 심판의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놀라운 회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날이 어둠의 날이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잘 살피고 오늘의 연약함에서 떠나 돌이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결심합니다.
고전 9:26~27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가 되겠습니까? 21절부터 예배를 소개합니다. 절기, 성회, 번제, 소제, 살진 희생의 화목제와 같은 예배의 형식과 내용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예배를 싫어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이 문제입니다.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는 마음으로 드리는 형식적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배 한 번 잘못 드렸다고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하나님을 떠난 삶이기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24절은 유명한 구절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그들의 일상의 삶이 분리되어서는 안 됨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마치 물이 계속해서 흐르듯이 흘러야 합니다. 마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눈가림하듯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삶의 변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행동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언약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 삶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삶 속에서 드러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심판의 선포를 통해 그 백성과 싸우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날이 오면, 여호와의 날이 오면, 하나님의 마지막 구속의 날이 됩니다. 그것을 아모스 9장 11절부터 15절까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완전한 반전이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 회복의 날 (11-12)
본문의 내용을 원문으로 다시 쓰면 매 문장마다 ‘내가’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회복하시는 주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겠다. 내가 그것들의 틈을 막겠다. 내가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키겠다. 내가 그것을 옛적과 같이 세우겠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겠다.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 하나님은 일으키시고, 막으시고, 일으키시고, 세우시고, 돌이키시는 분이십니다.
- 풍요의 날 (13)
그날이 되면 새로운 날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모작, 삼모작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계속해서 곡식을 거두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때 그 남은 자들이 부족함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평안의 날 (14)
그때가 되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곳에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아모스 5:11과 반대가 되는 삶입니다. 이런 날은 엄청난 영광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날은 오늘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은 내일의 참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오늘을 이기는 삶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