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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른 세대는 조금 덜 하겠지만,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폰이 없이는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생긴 말 가운데 하나가 노모포비아라는 단어입니다. 노 모바일폰 포비아를 줄인 말입니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거나 사용하지 못할 때 느끼는 불안감 초조함을 느끼는 증상을 말합니다. 하루의 일과를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으로 끝내는 현대인의 삶 속에 노모포비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배달되는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에 올라온 소식을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수첩에 약속을 적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이 약속 시각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환경에 의해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교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가 교회를 잠시 멈추게 하기 전에는 교회라고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역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방 사역, 주차 사역, 찬양대 사역, 경로대학 사역, 이미용 사역과 같이 다양한 사역을 중심으로 교회가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역에 같이 참여하고 어울리는 것이 교회에 다닌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처럼 사역에 교회의 삶이 집중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역이 멈출 때 나에게 미치는 교회의 의미가 약화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역하던 분들에게는 교회의 존재 의미가 약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사역을 하지 않으니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모든 사역이 멈춤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느끼는 신앙의 기반도 자연스럽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가치 없는 일이 없으신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핵심을 다시 정리하고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교회가 잘하고 있다는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단순히 외적으로 드러나는 숫자나, 교회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있는가가 교회가 잘하고 있다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모일 수 없고, 우리가 사역하는 대상도 제한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교인들이 머물러 있는 이 시간을 어떻게 이기고 있는가? 어떻게 도전하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를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이 쉽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무엇이 이겨내게 할까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이 그동안 쌓아 두었던 힘으로 이겨내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도들 안에 어떤 고백이 있는가? 신앙을 향한 어떤 몸부림이 있는가? 변함없이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것이 교회가 건강하다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적으로는 성도의 존재 목적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하는 우리의 고백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고, 나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나의 복음이 선명해야 합니다. 나의 복음이 분명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다시 확인하고 고백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의 존재 목적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품고 세상을 이끌어 가는 교회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단순한 사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명을 품고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기반을 다시 점검하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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