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텔레비전에 경찰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죄를 지은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애를 쓰는 이야기, 자신의 가정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휴대폰에 자신의 가족사진이나 정보를 담고 있지 않는다는 애틋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범인은 반드시 잡는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범인이 완전범죄를 꿈꾸지만, 점점 더 발달하고 있는 시스템이 범인을 잡는 비율을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과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죄의 형벌은 반드시 죽는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로마서 5장12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처럼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임하게 된 죽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육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 그리고 영원한 죽음입니다.
먼저, 영적으로 죽은 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는 자신이 죄인 되었음을 자각하고 부끄러움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던 것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그곳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게 됩니다. 창조주가 없는 피조물로서의 빈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그때 아담이 한 말을 아십니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에 빠진 인간은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창조의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해서 인간의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을 막지 않고 내버려 두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신다는 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을 내버려 두실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순리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바꾸어 살아갈 때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스스로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향락을 위해 한 행동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축복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잘못된 길로 갈 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간섭하신다는 것입니다.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간섭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간섭하심으로 우리가 새롭게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창조주를 분명히 바라보고 그분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인간은 창조주를 대신하여 피조물을 예배합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피조물을 예배하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돌이켜야 합니다. 나를 지으신 창조주께 예배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삶의 최고 가치입니다. 죄로부터 자유 한 자가 되었으면, 죄의 결과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으면, 죄의 옷을 벗어 버리고 내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