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복음을 말할 때 무엇부터 말씀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말할 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하며 그의 복음을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도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이 바로 세워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은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는 화목 제물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목 제물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고 풀어 버리기 위해 그 죄인을 대신하여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에게 화목이 필요했습니까? 화목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기준으로 봤을 때, 진노를 일으키는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 집행이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형벌 집행이 바로 화목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형벌이 집행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마련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는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는 제물이 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진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한 사랑으로 진노의 자녀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로 만드는 그 본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그분의 진노가 달래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화목제물로서의 예수님의 죽으심은 대속적 죽으심입니다. 대속[代贖]이라는 말은 남의 죄를 대신하여 받는 것을 대속이라고 부릅니다. 대속하기 위해 치르는 몸값을 속량[贖良]이라고 부릅니다. 옛날 조선 시대에는 노비에게 대가를 받고 그들의 신분을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하던 제도가 있었습니다. 몸값을 치르고 전쟁 포로나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을 속량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속량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죄인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량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량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는 화목제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는 화목 제물로서 십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을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지고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속량된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희생제물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형벌 대속적 죽음입니다.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고 죽으신 죽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를 위한 형벌 대속적 죽음인 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분명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죄의 본질과 그 죄로 말미암는 형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죄도 그냥 용납하지 않으시고 죽음의 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그 공의 위에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